[인터뷰]금융공기업이 '신의 직장'? "'고졸 주홍글씨' 여전해요"

김지호 기자 / 기사승인 : 2019-02-20 02: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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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20살 어린 나이에 취업한 고졸자에 조금 느리고 실수해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16년 금융감독원을 그만둔 장영은씨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부한 말이다.


장씨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 고졸 공채 1기로 금감원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이명박 정부가 고졸 채용을 적극 장려하고 있을 때였다. 정부는 독일의 마이스터제도를 본떠 특화된 산업에서 고졸자를 적극 양성한다는 계획을 짰다. 이전에도 고졸 사원이 있었지만, 대부분 사무보조 수준에 머물다가 정식 직원이 된 케이스다. 고졸 공채는 대졸 공채와 마찬가지로 조사역 직급이 주어졌다.


그래도 고졸 전형으로 뽑는 인원은 전국에서 겨우 5명. 고등학교 한곳에서 한명만 지원가능하기에 무조건 각 학교 전교 1등간 치열한 경쟁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금감원이었지만 ‘고졸’이라는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았다.


'꼬맹이여행자' 장영은씨/사진=아시아타임즈
'꼬맹이여행자' 장영은씨/사진=아시아타임즈

장씨는 “대놓고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대졸 직원들의 차가운 눈빛과 냉대를 느꼈다”면서 조금만 실수하면 ‘얘는 역시 고졸이다’라는 주홍글씨가 부각되면서 무슨 일을 해도 나쁘게 부각됐다“고 회상했다.


금감원은 보수적인 조직이었다. 손에 매니큐어를 발랐다가 회식 자리에서 혼이 나 화장실에서 울었다. 여직원은 발가락이 보이는 신발을 신지도 못했다. 20대 또래가 MT다 동아리활동이다 젊음을 즐기고 있을 때여서 압박감은 더욱 심했다.


그래도 대학을 다니면 내부 시선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직장인 특별전형으로 경희대학교에도 진학했다. 점심시간까지 아끼고 공부해 과 수석을 차지했다. 또 승급시험에도 합격해 6급 ‘고졸’ 조사역에서 ‘대졸’ 조사역과 같은 5급이 됐다. 그럼에도 주위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애가 고졸주제에 욕심만 많아서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는 비아냥거림만 들었다.


장씨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편두통은 일상이었고 위경련, 홍역에 대상포진까지 앓아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다”며 “화장실에서는 다른 사람이 밖에 있으면 나가지 않았고 웃음도 말도 점점 사라졌다”고 전했다.


그는 과감히 연봉 5000만원의 신의 직장 금감원에서 탈출해 세계여행을 떠났다. 어머니의 “호적에서 파버린다”는 겁박도 통하지 않았다. 고졸이라는 주홍글씨는 퇴사 때도 ‘고졸이라 세상물정에 어두워 이 좋은 직장을 나간다’는 말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금감원을 퇴사한 사연을 블로그에 올려두고 장씨는 홀연히 나섰다. 여성 혼자의 몸으로 428일간 6대륙 44개국을 돌았다.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서의 장영은씨.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서의 장영은씨.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블로그에 다른 금융공기업 직원의 ‘고졸인 자신도 비슷한 상황인데 퇴사방법을 알려 달라’는 쪽지가 와 있었다. 알고 보니 고졸 입사자에 대한 냉대는 금감원만의 문제가 아닌 대부분의 금융공기업, 아니 사회 전반의 문제였다.


대부분의 금융공기업에서 고졸 직원은 천대를 받고 있었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고졸 입사자의 합격 수기에는 대졸 취업준비생의 시기와 비난의 댓글이 달렸다.


그렇다고 그들은 다른 대안이 없고 나이를 먹어서 퇴사 후 재취업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신의 직장이 오히려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가 된 것이다. 장씨는 용기를 내서 책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를 썼다. 필명은 ‘꼬맹이여행자’다. 책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고졸 직원의 응원이 쇄도했다. 유튜브에 동영상도 올렸다.


사진=꼬맹이여행자 유튜브 캡처
사진=꼬맹이여행자 유튜브 캡처

장씨는 학벌을 떠나 자신이 정말 금융 분야에 뜻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저 연봉이 많고 잘 안 잘리는데다 겉보기에 화려하다는 이유로 금융공기업을 무조건 선호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제 금감원 시절 아픔을 뒤로하고 보다 유연한 마케팅 분야에서 새로운 진로를 찾아볼 계획이다. 금감원 출신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을 생각이다. 퇴사 후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았다. 그래서 신의 직장 금감원을 떠난 일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장씨는 “아무리 고졸로 입사했더라도 주위 시선에 결국은 다들 대학을 나온다”면서 “취업난으로 힘들겠지만 용기를 내 해쳐나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일자리가 부족하니 고졸자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생기는 것 같다”며 “직장에서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해줬으면 더욱 충성하는 마음도 생기고 상처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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