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직 칼럼] ‘180석이 과도하다’

강현직 주필 / 기사승인 : 2020-05-28 17: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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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직 주필
‘거여(巨與) 더불어민주당의 오만함이 제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하늘을 찌르고 있다. 4·15 총선에서 압승한 직후 겸손한 자세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각별히 조심하겠다던 여당이 태도를 바꿨다. 민주당의 요즈음 행태는 타협과 절충의 정치가 아니라 모든 것을 진보와 보수의 진영 대결, 적폐 대 개혁의 대결로 몰아 국민을 분열시키고 자기 진영만의 확고한 지지 기반을 구축하는데 몰두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21대 국회의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국회 원 구성 협상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전략적 발언으로 보기엔 너무나 권위주의적이고 오만함을 보여주는 발상이다. 이해찬 대표가 "관행을 근거로 20대 국회처럼 만들려는 야당의 주장과 행태에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이런 입장으로 소통에 임해 달라"고 원 구성 협상 중인 원내지도부에 강경대응을 주문한 이후 기류가 확 바뀌었다.

야당 반발은 불 보듯 하다. 미래통합당은 "의원수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고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둘거나 으름장을 놓는 인상은 새 국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여당 지도부의 도발적인 발언을 비판했다.

국회는 제6대 국회부터 제12대 국회까지는 국회의장직과 상임위원장직을 승자독식 원칙에 따라 다수당이 독점했으나 87년 민주화 이후 13대 국회부터 의석수를 기준으로 위원장 자리를 여야 중진 의원에게 배분해왔다. 의회권력 분점 체제가 정치문화로 자리 잡았고 원내 2당의 법사위원장 차지 역시 17대부터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민주당처럼 거대 여당이 여야 합의보다 다수결 원리를 앞세우면 의회정치는 실종될 우려가 크다.

나아가 최근 민주당은 ‘과거회귀당’이 돼 가는 게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설훈 최고위원은 1987년 북한 공작원들에 의한 KAL 858기 폭파 사건의 진상 조사가 미진하니 조사 결과를 재검증하자고 주장했고 이수진 국회의원 당선인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친일파 무덤을 파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하고 여수·순천 사건 재조명, 동학운동 명예회복 등도 추진하고 있다. 꺼내는 사안마다 과거를 뒤집자는 얘기다.

설 최고위원은 재조사 사유로 최근 미얀마 해상에서 KAL기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된 점을 들고 있으나 대한항공 KAL 858기 폭파 테러 사건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위원회가 당시 친여 성향 조사위원들을 투입해 국정원 내부 기밀자료까지 샅샅이 재조사를 벌여 김현희 등 북한 공작원에 의한 공중 폭파사건으로 결론이 난 사건인테 이를 다시 조사하자는 것이다.

여당은 또 ‘한만호 비망록’의 언론 보도를 계기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 재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이라고 100% 신뢰한다고 볼 수 없다”는 반법치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힘의 논리로 그동안 못마땅했던 과거 수사와 재판을 모두 뒤집겠다는 것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여당 인사들의 발언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포장됐지만 과거 보수 정권의 역사를 송두리째 지우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과거사 조사는 여러 갈래의 진실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신중해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전문가의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편향된 과거사 조사는 오해와 분열, 이념 갈등만 낳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코로나19 국난 극복이 시급한데 여당이 정치적으로 지지 세력을 응집시키기 위해 과거사를 뒤척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당선자 워크숍에서 공개된 여론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180석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절반이 넘는 55%였다. 핵심 지지층인 30·40대에서도 ‘과도하다’는 답변이 ‘적절하다’보다 많았다. 벌써 많은 국민들이 거대 여당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뻐서 많은 의석을 준 것이 아니다”라는 정세균 국무총리 지적이 와 닿는다.

2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오찬회동을 갖고 코로나 국난 극복과 국정 운영의 상생과 협치에 대해 협의했다. 이번 청와대 회동을 계기로 ‘거여’의 오만함을 벗길 기대한다. 통합과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기에 정권의 오만함은 일순간에 국민의 신뢰를 잃고,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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