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방과 일대일로] 막강한 위안화와 독처럼 퍼지는 '경제식민지론'

김태훈 기자 / 기사승인 : 2020-01-09 14: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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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세계은행에서 진리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총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기획재정부)

 

[아시아타임즈=김태훈 기자] 아세안은 6억50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거대한 글로벌마켓이다. 그 큰 성장 가능성에 주요국들은 일치감치 아세안을 주목해 왔고, 특히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속에서 더욱 주목받는 신흥국으로 떠올랐다. 


대한민국은 일찌감치 '신남방정책'을 표방하며 이러한 아세안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아세안 시장에 '일대일로'라는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신남방정책과 일대일로는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적극적인 투자로 커져가는 아세안 시장에서 선점적 지위를 획득하겠다는 방향성에서는 일맥상통한다. 두 정책이 아세안이라는 거대한 파이를 나눠먹어야 하는 태생적 경쟁관계라고 판단하는 아시아타임즈는 3회에 걸쳐 중국 자본이 잠식하고 있는 아세안 시장의 현황을 점검하고 신남방시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대일로'와 협력해야 할지, 아니면 경쟁관계로 뛰어넘어야 할지 분석해본다. (편집자 주) 

 

[아시아타임즈=김태훈 기자] 아세안에 강력한 위안화 태풍이 불어닥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아세안과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연결하는 글로벌 경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는 '일대일로'에 매진하면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자본력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위안화가 기축통화에 편입된 이후에는 위안화의 폭풍은 더욱 거세졌다. 

 

최근 아세안 국가들은 인프라 건설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본을 메우기 위해 달콤함 위안화의 유혹에 거침없이 손을 내밀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는 이미 아세안의 '일대일로' 자본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중국 국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진 리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총재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완성하려면 아세안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고 인프라 개발로 아세안도 혜택을 볼 것”이라며 “향후 대규모 인프라 사업 6개에 10억9000만 달러(한화 약 1조2657억원)를 투자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6년 자본금 1000억 달러(약 116조원)로 출범한 AIIB는 중국이 미국의 세계은행, 일본의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은행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인도, 파키스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국가 그리고 미국의 대표적인 우방국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도 참여했다. 현재 회원국은 100여국에 달한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등 전문가 집단들은 중국이 ‘일대일로’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시기를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보고 있다. 당시 중국은 인건비가 상승하고, 경제성장률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자 과잉공급에 시달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대일로’를 구상한 것이다.

중국이 아세안에 많은 자본을 투입해 중국 기업들이 도로, 교량, 철도, 발전소 등 인프라 사업을 수주하면 중국 내에서 생산된 원자재나 설비의 과잉공급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중국 자본이 들어간 사업은 한국과 일본 대신 중국 국영기업을 우선 선택할 것이고, 이들은 중국 내 중소협력업체들과 작업을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추진하는 사업들에는 남중국해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말레이시아의 쿠안탄 항구,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사업, 필리핀의 남북철도 사업, 태국의 판-아시아 철도 네트워크 등이 꼽힌다.

실제로 중국의 금융정보업체인 윈드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중국의 아세안에 대한 해외직접투자액(FDI)은 지난 2015년 140억 달러(약 16조원) 수준으로 5년 전 40억 달러(약 4조6448억원)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말레이시아에 대한 투자가 가장 많았고,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등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필리핀은 지난 2017년 FDI 유입액이 102억 달러(약 11조원)로 3년 전 57억 달러(약 6조6188억원)에서 약 2배 증가한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투자는 감소했지만 중국과 일본의 투자는 빠르게 늘었다. 지난 2018년 기준 미국과 유럽의 투자액은 각각 1억6000만 달러(약 1857억원), 3억4700만 달러(약 4029억원)로 전년 4억7300만 달러(약 5492억원), 18억 달러(약 2조901억원)보다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중국과 일본은 각각 7배, 3배 늘었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투자 감소로 생긴 공백을 중국과 일본이 채웠다는 의미다.

캄보디아의 경우 지난 1994~2014년 전체 FDI 누적유입액인 192억 달러(약 22조원) 중 44%가 중국이었고, 지난 2017년에는 63억 달러(약 7조3143억원)를 기록해 전년 36억 달러(약 4조1796억원)보다 약 2배 늘었다. 캄보디아 남서부 항구도시인 시아누크빌의 호텔, 카지노, 레스토랑 등의 90%는 중국인이 소유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밖에 중국은 미국과 통상마찰을 겪는 가운데 지난 2018년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새로 체결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는 등 교역을 다변화하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의 두리안, 필리핀의 바나나, 캄보디아의 쌀 등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고,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도로와 철도 사업들이 완공되면 물류 효율성은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이 미국산 농산물을 더 많이 구매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지난해 상반기 아세안의 대중 교역량은 2880억 달러(약 334조원)로 전년동기대비 10.5%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대미 교역량은 2540억 달러(약 294조원)로 9% 감소해 중국이 미국을 처음으로 앞섰다. 


다만 중국이 AIIB를 출범하는 등 아세안에 상당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지만 중국 마음대로 모든 사안을 결정해 ‘일대일로’를 완성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우선 중국의 AIIB 투표 지분은 약 26.5%로 가장 많지만 인도(7.6%), 러시아(5.9%), 독일(4.1%), 한국(3.5%), 호주(3.4%), 프랑스(3.1%), 인도네시아(3.1%), 영국(2.9%) 등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는 일부 아세안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중국을 순순히 따르는 것도 아니다.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필리핀, 미얀마 등은 친중국가이거나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는 반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중국에 비교적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인도는 중국의 잠재적 라이벌로 미국과 협력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캄보디아, 필리핀 등 일부 아세안 국가에서는 중국과 경제적으로 가깝게 밀착하지만 중국 자본에 너무 많이 의존해 식민지화 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어 이들이 여론을 잡는다면 중국은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 

이밖에 중국의 ‘일대일로’ 달성에 필요한 자본에 비해 AIIB가 지원하는 자금규모가 너무 작아 계획대로 사업이 진척되기 어렵고, 중국의 심각한 부채도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상이변도 '일대일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최근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사업은 폭우로 인한 홍수가 발생해 건설자재가 손실되거나 철도를 깔려는 길목에 잔해가 쌓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데이빗 달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과잉공급을 해소하려면 외부로 눈을 돌리기보다 오히려 내수시장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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