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균화 칼럼] 그들만의 密室

정균화 명예회장 교수 기자 / 기사승인 : 2019-12-01 10: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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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균화 명예회장 교수
“오늘날 0.1%에 해당하는 최상위층의 수입은 총수입의 22%로, ‘고작’ 7%에 지나지 않았던 1970년대 후반에 비해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상위 1%가 차지하는 자산은 총자산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42%에 이른다.”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규칙에 따라 살아가는『엘리트 제국의 몰락,著者 미하엘 하르트만』에서 엘리트들의 실체를 밝혔다. 

 

2017년 말, 세계적인 전기전자기업이자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엔지니어링회사인 지멘스는 독일에서 약 3,500명의 일자리를 없애고 공장 3개를 매각 또는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사회적? 정치적 파장이 어마어마한 이 결정에 대해 이사회는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알았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특히 CEO ‘조 케저’는 심화되는 빈부 격차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노동자들이 주식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한 적이 있는데, 그의 시급은 약 3,500유로, 한화로 450만 원 정도였다. 독일의 경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일반 직원과 CEO의 임금 격차는 14배 수준이었다. 오늘날 임원은 일반 직원의 54배, CEO는 80배의 급여를 받는다. 

 

엘리트와 대중의 거리는 최근 수십 년간 점점 더 멀어졌다. 이는 무엇보다도 막대한 부(富) 혹은 소득 차이와 관련이 있다. 아무리 느슨하게 보더라도 엘리트층 대부분의 월수입은 1만 유로 단위 이상으로 전체 소득자 중 최 상위 1%에 속한다. 게다가 그들은 대개 평균 이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엘리트들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회적 배려를 하는 엘리트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냉정한 숫자의 논리가 보여주는 것은 이들이 가장 약탈적인 엘리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엘리트는 자신의 생활 방식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거부하고 공공선을 위해 권력자가 희생할 수도 있다는 관념을 부정하면서 일련의 사회적 합의를 고수한다. 미국은 뜨겁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8년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를 강력하게 압도한 이데올로기는 이름도 찬란한 ‘신자유주의’였다. 시장의 힘과 우월성이 그 무엇보다 강조되었고, 그 안에서 각 개인의 자유는 언뜻 무한한 듯 보장되었다. 눈부신 기술 혁신은 사방을 온통 새로운 것들로 번쩍이게 만들며 물질의 풍요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부의 양극화를 필두로 한 ‘불평등’ 문제가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새로운 도금시대, 부자와 권력자들로 가득 찬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간 『엘리트 독식 사회, 著者 아난드 기리다라다스』에서 내부자의 신랄한 고백이 이어졌다. 

 

날카로운 시선과 번뜩이는 통찰을 무기로 세상의 구원자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의 폐부를 정중하게 꿰뚫는 불공평한 현 상태의 수혜자이자 미국 사회를 좀먹은 숱한 문제의 발생과 지속에 모종의 역할을 한 이들의 열망과 위선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열린 변화의 열매를 ‘아주 운 좋은 이들이 전부 챙겨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보통사람들의 박탈감과 분노가 극에 달한 지금, 미국의 시스템은 고장 났고 이제 바뀌어야만 한다는 인식이 뜨겁게 확산된 지금, 그곳에 모인 엘리트들은 ‘변화’에 관해 말하면서도 결국 그 이득을 가장 많이 챙겨가는 듯 보인 까닭이다. 오늘날 미국의 엘리트들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회적 배려를 하는 엘리트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냉정한 숫자의 논리가 보여주는 것은 이들이 가장 약탈적인 엘리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엘리트는 자신의 생활 방식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거부하고 공공선을 위해 권력자가 희생할 수도 있다는 관념을 부정하면서 일련의 사회적 합의를 고수한다. 

 

“교육 수준이 높은 어느 엘리트의 무지와 편견, 집단사고도 똑같이 무지이고 편견이고 집단사고이다. 또 사회 안에서 통용되는 지식 중 1%도 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99%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지도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모순이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특별한 지식과 평범한 지식의 차이는 부차적인 것이 절대 아니다. 결과를 고려할 때, 그 차이의 사회적 함의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권력을 집중하는 것이 지식을 집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그것이 아주 많은 사회공학이 엉뚱한 결과를 낳는 이유이고, 또 아주 많은 독재자들이 자기 나라를 재앙으로 몰아넣는 이유이다.”<출처: 토마스 소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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