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석 칼럼] 어진에 ‘표준영정’이 웬 말인가

김호석 수묵화가·문학박사 / 기사승인 : 2020-01-29 09:57:58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 김호석 수묵화가·문학박사
최근 단종어진을 정부 표준으로 지정. 심의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 사회에서 어진을 그것도 조선시대에 제작하지 않았던 것을 그린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와 어진이 지자체에 의해 문화 관광 상품화 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것도 사사를 당한지 560여년이 지나 추사 한다는 점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현대의 사고와 방식으로 왕을 그려 진짜 같은 가짜로 전시장에 게시한다는 추모 방식은 ‘왕을 소비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 경기전에 어진을 봉안하고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혼령도 편히 쉬어야 함에도 향교에서 공부하고 매질하는 소리로 방해가 된다하여 부성 밖 6~7리 되는 곳으로 옮기게 할 정도로 어진은 그 자체가 신이었다. 어진은 왕이나 사신(使臣) 이외에 절을 해서는 안 되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목적은 자손이 조상을 추모한다는데 있다. 보본반시 사상을 기본으로 한다. 조선은 조상을 기리기 위한 초상화 수요가 많았고 후손은 정성을 다해 모셨다. 초상화의 특징은 철저한 사실성, 전신사조, 전통성과 시대성 구현, 인물화의 정수로 정리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의해 초상화는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초상화 자체가 바로 조상이었고 선현 이었다.

초상화의 정점은 어진이다. 어진은 왕의 초상을 말한다. 어진은 임금이 생존 시 바라보면서 그린 도사, 승하한 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그 모습을 기억하여 그리는 추사, 그려진 어진이 훼손되었거나 새로운 진전에 봉안 될 경우 새 본을 그리는 모사가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 태조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수량의 어진이 제작 되었다. 대부분의 어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거의 산일되고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현전하는 어진은 태조, 영조, 연잉군(훗날 영조) 그리고 철종, 익종 등의 잔 폭만이 전한다.

조선조 어진이 지니는 의미는 어진 제작 과정과 봉안하는 진전제도에서 여실히 알 수 있다. 엄격한 절차와 국가적 배려가 있었다. 어진 제작은 도감을 설치하여 이를 담당 할 기구와 책임 인물을 선정했다. 그리고 화사는 도화서 화원뿐 아니라 실력이 있는 화가에게 시재에 참여 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다. 화사는 공신상을 그리게 함으로써 공개경쟁을 통해 선발했고 인원은 대략 6명으로 구성되었다. 주관화사는 왕의 얼굴을 담당하고 동참화사는 시재의 차석이 맡았는데 왕의 몸체를, 수종화사는 설채 시 안료를 섞는 일을 도왔다.

조선시대에 태조 진전이 여러 곳에 세워졌고 태조어진은 기록으로 전하는 것만 26축이나 된다. 태조 어진이 그려질 때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었다. 태조는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태종은 왕통의 정당성과 정치적 손상의 회복을, 세종은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을, 숙종은 경종에게 왕위를 계승할 때, 고종은 흥선 대원군으로부터 분리하여 친정(親政) 체제를 시도했을 때 제작했다. 권력이란 아버지가 아니라 조선을 개창한 사람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왕위는 태조의 핏줄이요 전제왕권이 태조로부터 왔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영월군이 신청한 단종 어진 제작에 따른 심의 과정을 보면서 왕의 얼굴은 관광객을 위한 홍보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 상품화를 위해 어진을 제작한다는 것은 목적이 불순하고 천박하다. 지금 영월군 관계자가 하는 행동을 보면 왕의 권위나 법통, 덕, 위엄, 정신, 통치 등 고증보다 표준영정 지정 결과만 중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 어진 심의 자리에서 심의위원들에게 담당자 징계 운운하며 소송도 불사 하겠다고 협박할 수 있을까? 자기가 존경하지 않는 자세로 모신 초상화를 어느 누가 존경의 눈으로 추모하겠는가? 왕의 어진에는 ‘표준영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는 안 된다. 왕은 기념하지 않는 것이 법이다. 

[저작권자ⓒ 아시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호석 수묵화가·문학박사
뉴스댓글 >

오늘의 이슈

주요기사

+

청년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