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아 "3번의 이혼과 혼전임신, 극단적 선택 시도까지"

박민규 기자 / 기사승인 : 2020-02-18 09: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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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타임즈=박민규 기자] 배우 이상아가 세 번의 이혼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며 눈물을 쏟았다.

17일 방송한 SBS플러스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는 원조 책받침 여신 이상아가 출연해 김수미와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방송에서 이상아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라며 "최소한의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먹는다. 이렇게 먹은지 10년은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정말 잘 먹었는데 확 달라졌다"며 "출산하고 살이 쪘었다. 98kg까지 나갔는데 그게 지옥 같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수미는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는데 왜 사생활 때문에 일을 못할까 안타까웠다"라고 말했고, 이상아는 첫 결혼에 대한 자신 심경을 털어놨다.

이상아는 첫 결혼에 대해 "4개월 연애하다가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됐다. 묘하게 인연이 돼서 분위기 때문에 사건이 만들어졌다"며 "상대방 부모님에게 초대 받은 날, 그 부모님이 다쳐서 병문안을 갑자기 갔게 됐는데 그때 결혼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결혼은 이렇게 하는구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번의 결혼 모두 결혼 전에 브레이크가 있었다. 첫 번째는 청첩장을 돌리고 일주일 남긴 상황에서 남자가 결혼하지 말자고 했다"고 밝혔다.

 


이상아는 두 번째 결혼에 대해서는 "(첫 남편과) 이혼하고 바로 1년 만에 재혼했다"며 "그때는 계산적으로 결혼했다. 첫 번째에 실패했기 때문에 '나 괜찮은, 돈 많은, 여유 있는 사람이랑 결혼해'라고 주변에 보여주고 싶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빨리 이 사람의 애를 낳아야겠다 계획을 한 거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임신이 됐는데 혼전임신이라는 게 언론에 먼저 알려졌다. 결혼식장에서 엄청 울었다. 딸 돌잔치 이후 바로 이혼했다. 돌잔치는 사진으로 남겨야 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를 듣던 김수미가 "이혼할 정도로 안 좋았었냐"고 묻자 이상아는 "이혼할 때 부부관계가 안 좋았다. 빚이 너무 많아진 것이 이유다. 제가 보증을 다 서줬다. 그땐 잘살아 보려고 보증을 서줬다"고 답했다.

이상아는 "그 빚은 조금씩 갚기도 하고, 협박 전화도 받았다. 한 7~8억 정도였다"라며 "급히 이혼을 결정하고, 지금 스무살 된 딸을 혼자 다 키웠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세번째 결혼도 초스피드였다. 이상아는 "딸 아이 돌잔치 치르고 바로 세번째 결혼을 했다. 결혼은 곧 가족이라는 그림을 갖고 있었다. 딸이 어릴 때 새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때 당시에 힘들었는데 저를 도와준 남자가 있었다. 이런 남자는 의지하면서 살수 있겠다 싶었다"고 털어놨다.

김수미가 "그럼 왜 헤어졌나?"라고 반문하자, 이상아는 결국 빚 때문에 파경을 맞았다고 고백했다.

이상아는 "세 번째는 나중에 힘들어서 헤어졌다. 자꾸 빚이 늘어나는 거다. 결혼할 때마다 늘어나니까 이게 뭐지 싶더라"라며 "세 번째 결혼 때는 사기를 크게 당했었다. 13년 살았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부부 싸움이 잦았다"고 말했다.

이에 김수미는 "애정 결핍이다. 법적으로라도 남편을 내 것으로 하고 싶은 것이다. 재산이 내 명의로 되어 있으면 좋잖아.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엄마가 74세신데 최선을 다해 드려라. 톱스타인 딸이 아픔을 여러번 겪으면서 수십번 가슴이 난도질 당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상아는 엄마 이야기에 첫 번째 이혼 때 극단적 시도를 했던 적도 있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상아는 "첫 번째 이혼 때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었다. 너무 힘들었다. 내 인생 최초의 실패였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김수미는 "앞으로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지금부터는 아무 생각 말고 돈을 벌 생각해라"라며 "섭외 오면 무슨 방송이든 나가라"고 조언하며 이상아를 응원했다.

 


한편 1972생인 이상아는 1984년 광고 모델로 첫 데뷔한 뒤 KBS드라마 '산사에 서다'로 배우로도 입문했다. 이듬해인 1985년에는 영화 '길소뜸'으로 영화계에도 발을 들이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특히 이른바 '책받침 여신'으로 대표됐던 이상아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을 자신의 시대로 만들기도 했다. 그와 라이벌 스타로 꼽혔던 배우들은 하희라, 채시라, 김혜수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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