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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15일 Tue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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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오늘] 영국 민주주의의 시발점 '마그나 카르타'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 왕국에서 귀족들이 국왕을 협박해 '마그나 카르타'에 합의를 받아냅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군주 존 왕은 1204년 프랑스와의 전쟁 중 북부 프랑스에 보유하고 있던 영토를 잃고 맙니다. 이에 존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10년간 수많은 세금을 거두고, 군대를 개혁하고 유럽 본토의 여러 국가들과 동맹을 맺었죠. 그러나 1214년 프랑스와의 부빈 전투에서 잉글랜드 왕국이 패배하면서 존의 영토 회복은 실패하게 됩니다. 이후 10년간 세금 등 존의 재정정책에 불만을 가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죠. 또한 마찬가지로 왕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런던의 시민들까지 가세했습니다. 귀족들은 런던에 무혈로 입성했고, 전쟁으로 피폐해졌던 존은 반란 귀족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귀족들은 국왕을 처형하지 않았죠. 대신 '마그나 카르타'에 합의하도록 합니다. '마그나 카르타'란 국왕의 권리를 명시하고 존이 서명한 문서로, 왕에게 몇가지의 권리를 포기하고, 법적 절차를 존중하며, 왕의 의지가 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마그나 카르타'는 교회의 자유, 봉건적 부담의 제한, 재판 및 법률, 도시 특권의 확인, 지방 관리의 직권 남용 방지, 사냥, 당면한 애로 사항의 처리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특히 자유민은 법이나 재판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유, 생명, 재산을 침해받을 수 없고, 왕의 명령만으로 전쟁 협력금 등의 명목으로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죠. '마그나 카르타'는 민주주의의 시발점으로 강조되나 사실상 문서 자체에 민주주의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심지어 '마그나 카르타'에 날인한 직후 존은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마그나 카르타'를 무효로 해달라는 청원을 올렸고, 같은 해 8월 24일 교황은 헌장이 무효라는 교서를 내리죠. 또한 제 1차 남작전쟁에서 존의 아들 헨리 3세의 세력이 프랑스와 남작 반군에게서 승리하죠. 단 전쟁 중 존은 이질로 숨지고 맙니다. 이후에도 '마그나 카르타'는 17세기 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죠. 단 '마그나 카르타'는 왕권신수설이 남아있어, 모든 권력이 왕으로부터 나오던 시대에 왕의 권력을 문서로 명시하고 일부 축소시켰다는 점과, 평등사상의 전파와 법치주의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마그나 카르타'는 17세기에 이르러 왕권과 의회의 대립에서 왕의 전제에 대항해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권한으로 쓰였습니다. '마그나 카르타' 중 "일반 평의회의 승인 없이 군역대납금·공과금을 부과하지 못한다"는 내용은 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서 사용됐고, 또 "자유인은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에 의한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으면 체포 ·감금할 수 없다"는 내용은 재판소에서의 재판요구의 근거로서 크게 이용됐죠. 헌법이란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영국에서도 '마그나 카르타'는 헌법과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짐은 이 헌장을 준수할 것이며 짐의 영속적인 후계자들을 위하여 왕국의 모든 자유민은 짐과 짐의 후계자에 의하여 이들 자유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란 내용은 영국 입헌군주제의 근거로 활용됐습니다. 또한 '마그나 카르타'는 1215년 6월 15일 문서가 아니라 구두합의로 이뤄졌다고 하는데요. 이후 왕의 필경사에 의해 왕의 칙허장으로서 문서로 선서하고 확인됐죠. 이후 1215년 6월 '마그나 카르타'의 사본을 전국에 보냈지만 이들 중 현재는 4부만이 남아 영국도서관과 링컨 대성당, 솔즈베리 대성당에 있다고 합니다.

[잊지마, 기념일!] 6월 기념일 키스데이? 기말고사 준비하세요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기자가 싫어하는 14일 기념일이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6월 14일 키스데이입니다. 키스데이는 연인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뜻에서 키스를 나누는 날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6월 14일이지만, 미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를 포함한 한주간을 의미하는 밸런타인위크 중 밸런타인데이 바로 전날을 키스데이라고 합니다. 키스데이는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와 달리 그 기원을 찾을 수 없는 기념일이기도 한데요. 그러나 국립국어원의 2004년 신어 연구보고서에서는 '6월 14일을 이르는 말'이라고 명시돼 있기도 합니다. '14일 기념일' 중 '6월'의 기념일이 왜 키스데이인 걸까요? 실질적으로 14일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대부분 '연인'들입니다. 그렇다보니 젊은 10대와 20대들 사이에서야 기념일이고, 사회인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날 중 하나일 뿐이죠. 결혼기념일이나 잘 챙기세요. 반면 6월은 10대와 20대가 모두 바쁜 달이기도 한데요. 10대는 물론 20대 중 학생의 비중이 많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도 키스데이는 기말고사 시기가 겹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고등학교는 6월 말부터 7월까지 기말고사 기간인 경우가 많고, 대학교는 6월부터 기말고사 기간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때문에 10대나 20대 학생들은 연인이 생기면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기념일까지 챙겨야한다는 문제가 생기죠. 키스데이를 만든 사람이 기자와 같은 솔로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집니다.

[역사속 오늘] ABO식 혈액형 발견한 카를 란트슈타이너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A형은 꼼꼼하고, 신중하지만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B형은 사교적이지만 짜증을 많이내고 자기중심적이다. O형은 열정적이지만, 다혈질이다." 많이 들어본 혈액형 성격론입니다. 사실 이 같은 혈액형 성격론은 과학적으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유사과학인데요. 이같은 ABO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의 항원과 혈액 속 항체가 무엇이냐에 의해 구분됩니다. 간단히 A형은 혈액 속 항체에 A형 항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B는 B형 항원, AB형은 A형 항원과 B형 항원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O형은 A형 항원, B형 항원 모두를 갖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같은 ABO 혈액형은 오스트리아의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1868년 6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란트슈타이너는 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취리히·뷔르츠부르크·뮌헨 등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죠. 이후에는 병리생태학을 전공해 1911년 병리학 교수로 임명됐으며, 1922∼1939년 미국 록펠러의학연구소의 병리학 교수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란트슈타이너는 1901년 사람의 적혈구가 타인의 혈청에 의해 응집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ABO식 혈액형을 발견했지요. 이후 란트슈타이너는 필립 레빈과 1927년 MN식 혈액형을 발견했고, 이후 1940뇬에는 RH혈액형 인자를 발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란트슈타이너는 소아마비 초기에 유효한 혈청을 개발하고, 매독에 대해서도 연구합니다. 이같은 업적으로 란트슈타이너는 1930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했죠. 2004년 국제적십자사연맹, 세계보건기구, 국제헌혈자조직연맹, 국제수혈학회 등에서는 이런 카를 란트슈타이너의 업적을 기리고, 또 헌혈의 중요성을 전하며, 헌혈자에게 감사하기 위해 카를 란트슈타이너의 생일인 6월 14일을 세계 헌혈자의 날로 지정합니다.

[신간] 부의 시나리오-'갓건영'이 제시하는 인플레이션 대비 포트폴리오

[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전 국민 주식시대가 열렸다. 용돈을 모아 주식 투자를 시작한 10대부터 은퇴자금으로 투자하는 60대까지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과열됐던 주식시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 이슈를 만난 직후 급격히 빠른 속도로 부의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주식을 시작한 동학개미군단은 지금, 첫 번째 변곡점을 맞이한 것이다. 미국의 재무부장관 재닛 옐런의 금리 인상 발언으로 증시에는 '곧 버블이 터질 것'이라는 공포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투자를 해야 한다며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 '영끌', '빚투'를 시작한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1년 전에 수익률을 높여줄 돈 되는 기업을 찾으며 종목 선정에 시간을 쏟았다면, 지금은 다가올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대비해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삼프로TV' 누적 조회수 550만회를 달성하며 거시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저자 오건영이 '금융천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금융위기다.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새로운 대응책이 쏟아져 나왔고, 매일 밤을 새워 경제 데이터를 분석했다. 경제 기사를 해석하고, 정책을 곱씹다 보니 뒤에 숨겨진 정부의 의도와 전체적인 경제 시스템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코로나19는 금융위기 때보다 더 많은 경제부양책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바로바로 실행되기까지 했다. 전문가조차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저자는 수십 년간 온갖 부침을 겪었던 실전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든 '4가지 투자전략'을 소개한다. 저자의 작년 저서 '부의 대이동'이 수십만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쉽고 친절한 설명'이었다. 저자에게는 '여의도 1타강사'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필요한 내용만 쏙쏙 빼내 핵심만 간결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 투자를 접하는 사람도 기초부터 탄탄히 다질 수 있도록 금리, 환율, 채권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또 그래프를 추가해 거시경제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도록 했고, 관련된 경제 기사를 수록해 독자들이 경제 독해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중요한 내용은 삽화를 그려서 이해도를 높이고 내용이 각인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새롭게 제안하는 4가지 부의 시나리오는 구성도 간단하다. 경제를 '성장'과 '물가'라는 두 개의 축으로 나눠서 4분면을 만들고 이것을 투자 포트폴리오로 만들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물가'는 높은지 낮은지 구분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성장이 더디고 금리가 낮은 시대라면 '저성장·저물가 시나리오'라고 보면 된다. 만약 금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면? '저성장·고물가 시나리오'를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4가지 부의 시나리오'를 이용하면 이처럼 경제 상황이 뒤바뀔 때도 손쉽게 투자전략을 바꿀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새로운 시나리오가 펼쳐지기 전에 재빨리 포트폴리오를 바꿔놓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시나리오별로 주식, 채권, 원자재나 금 같은 대체자산의 강세와 약세를 정리해 실적에 쉽게 적용할 수 있게 했다. 주식, 채권 자산군별로 투자 대상들을 잘게 쪼게면 보다 좋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저장의 설명이다. 고성장·고물가 시나리오에서는 주식이 강세지만,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보다 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쪽이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가는 것과 같은 논리다. 채권도 마찬가지로 단기채, 중기채, 장기채, 투자등급 회사채, 이머징 국채처럼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진 채권이 있어서, 포트폴리오를 보다 풍부하게 다방면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저자는 "핵심은 '다음은 어떤 시나리오로 움직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포트폴리오를 따라하는 것보다, 경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 그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의 올바른 성정체성 확립 위한 안승남 구리시장의 뚝심 '구리청소년성문화센터'

[아시아타임즈=송기원 기자] 최근 사회적 문제로 성(性) 비위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안승남 구리시장은 청소년 때부터 바르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우리 미래인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에 잘 안착하고 적응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안 시장은 “인터넷 발달로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성범죄가 사회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기에 지방정부인 구리시가 책임감을 갖고 성장기인 아동∙청소년들이 자신의 몸을 아끼고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차원에서 탄생한 것이 구리청소년성문화센터이다. 구리시는 지난달 26일부터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 지원 및 복지 증진을 위해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본격적인 프로그램 운영에 들어갔다. 현재 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미래 주역인 아동∙청소년들의 건전한 성(性) 가치관을 정립하고,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여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주안점을 두고 전문가들의 강의와 지도하에 내실 있게 진행되고 있다. 청소년문화센터가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구리시는 안 시장의 강력한 추진을 통해 지난 2019년 12월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설치∙운영 조례를 제정했고 이어 지난해 공간디자인 및 전시 콘텐츠 개발 용역과 12월 설치 완료에 이어 올해 정규 프로그램이 운영되기까지 1년 4개월의 산고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부모들이 반대도 있었다. 타 성문화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외설적이고 조기 성애화를 부추기는 교육내용과 다양한 성을 인정하는 교육내용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안 시장은 이런 우려에도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성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토대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들로 교육할 수 있도록 센터 설치를 추진해 나갔다. 이 기간 동안 안 시장은 각계각층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관내 학교장, 보건교사, 성교육 전문가, 학부모 대표, 시의회 의원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청소년성문화센터가 정상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총 7회에 걸쳐 운영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등 학부모들과 공감대를 넓혀나갔다. 이러한 안 시장을 비롯한 구리시 공무원들이 노력으로 센터를 반대했던 학부모들이 센터 필요성과 교육내용에 대해 공감하며 오늘에 이르는 성과를 올리게 됐다. 센터에서 운영되는 프로그램 모두가 알차다는 평가이다. 세부적으로 탄생 과정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생명’부터 우리 몸에 대해 알아보는 ‘건강한 나’, 사춘기를 맞이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두근두근 사춘기’, 성폭력을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 ‘나를 지켜요’, 무분별한 음란물의 위험성을 알리는 ‘나의 밝은 성’ 까지 총 5개 과정으로 매우 관심 있고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에 운영되고 있는 일부 학부모들이 반대했던 것이 타 성문화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외설적이고 조기 성애화를 부추기는 교육내용과 다르게 다양한 성을 인정하는 교육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이다. 또한 청소년 성교육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작년 청소년 성교육강사 양성 기본과정을 운영하여 17명의 수료생을 이미 배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구리시는 앞으로도 청소년 성교육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성교육강사 양성과정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예정으로 이는 청소년 성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센터 위치와 시설도 시민 친화적으로 구성해 시민들의 호감을 높이고 있다. 센터 교육 공간은 청소년들의 이용 편리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여 접근성이 좋은 구리시청소년수련관 2층에 설치했다. 센터 내 시설은 3곳의 실내 교육장과 1곳의 야외교육장, 그리고 상담실과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장별로 약 10여명을 수용할 수 있어 단체별∙토론 교육이 가능하도록 조성했다. 최초 (성)문화 프로젝트를 우려했던 수택동 주민 김 모(45세, 여)씨는 “청소년 (성) 문화교육이 질적으로 내실성이 없고 일회성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에 걱정과 우려를 했다. 그런데 아이와 교육을 함께 받아보니 교육내용이 알차고 내실이 있었다”며 “이런 교육을 진행해준 시장님과 공무원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안 시장은 “청소년 눈높이에 적합한 선제적인 성교육으로 언제 어디서든 위기 요인을 조기에 발견하고 성인지적 콘텐츠의 개발과 청소년 심리정서에 부합한 각종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여 청소년들이 더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여 꿈과 희망이 울려 퍼지는 ‘구리, 시민행복 특별시’ 구현에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구리청소년성문화센터 ◇ 추진과정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설치운영 조례 제정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공간디자인 및 전시컨텐츠 개발 용역 - 2020년 5월6일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위원회 구성 - 2020년 10월5일~11월18일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설치 공사 - 2020년11월6일~12월12일 구리시 청소년 성교육강사 양성 기본과정 운영 - 2020년 12월22일~12월29일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진입통로 개선공사 - 2021년 2월24일~3월24일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시범 프로그램 운영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위원회 개최 (총 7회) 구리시 청소년성문화센터 정규 프로그램 운영 ◇ 설립 후 업적 청소년 성교육강사 양성 기본과정 운영 (수료자 17명 배출) 청소년성문화센터 시범 프로그램 운영 (소중한 생명 외 4개 프로그램, 32명)

[역사속 오늘] 일본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사건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2008년 6월 8일 오후 12시 35분께 일본 아키하바라 주오도리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합니다. 2톤 트럭이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을 덥친 후, 맞은 편 차선에서 오던 택시와 부딪친 후 멈췄죠.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경찰관과 행인들은 트럭에 치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다가왔죠. 이때 트럭에서 내린 운전자가 등산용 나이프를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일본 아키하바라의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7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당합니다. 트럭을 운전한 가토 토모히로는 인력 파견업체 직원으로 당시 나이는 25살에 불과했죠. 그는 '생활이 피곤해서', '삶에 지쳐서'란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당시 가토는 범행 9일전 일하던 자동차제조업체에서 정리 해고를 통보받고, 처치를 비관해 범행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범행 4일전 가토는 회사에서 자신의 작업복이 보이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한바탕 어지럽힌 뒤, 무단으로 조퇴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자동차제조업체 측은 정리해고 통보를 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죠. 가토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을 빙자한, 상습적인 구타 등의 아동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좋은 성적을 받았으나 고등학교 무렵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단기 대학에 입학했죠. 또한 가토는 제대로된 직장을 가지지 못했고, 친구도 없었습니다. 가토는 일본의 인터넷커뮤니티에 1000건이 넘는 게시물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범행 전 새벽부터 범행 20분 전까지 인터넷커뮤니티에 자신의 범행을 예고하기도 했죠. 일본 법원은 가토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2015년 2월 2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상고를 기각하고 1·2심과 같은 사형을 확정지었죠.

[역사속 오늘] 탈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프랑스의 탈인상주의 화가 외젠 앙리 폴 고갱은 1848년 6월 7일 프랑스 파리의 클로비스 고갱과 알린 샤찰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고갱의 아버지 클로비스는 오를레앙에서 이주한 사업가 집안 출신의 자유주의 언론인이었고, 어머니 알린은 인그레이빙 작가 앙드레 샤찰과 사회주의 활동가 플로라 트리스탕의 딸이었죠. 그러나 1850년 클로비스는 신문에 낸 기고로 인해 프랑스 당국에 추방령을 받았고, 페루로 가던 중 심장마비로 숨지고 말죠. 페루에 있던 고갱의 외종조부는 페루의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정치인이었고, 고갱 가족을 환대했지만 1845년 실각하면서 고갱 가족은 결국 파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알린은 파리에서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죠. 고갱은 지역 학교를 옮겨다니다가 오를레앙의 리시 잔다르크 학교를 졸업하고, 상선해병을 위한 도선사를 하다가, 프랑스 해군에 입대해 2년동안 복무합니다. 이후 1871년 고갱은 23세의 나이로 지인이었던 구로타프 아로사의 소개로 증권회사에 취직합니다. 이후 고갱은 증권 중개인으로 성공하며 11년동안 근무하죠. 고갱은 증권 중개인으로 많은 돈을 벌지만, 1882년 파리의 증권시장이 붕괴하자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고갱은 갑자기 전업화가로 직업을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증권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안 된 고갱은 취미로 그림을 기렸고, 그러면서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와 친해지기도 했죠. 1881년과 1882년, 고갱은 '보지라르의 채소밭' 등의 그림을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전업 화가가 된 고갱은 이후 차츰 인지도를 쌓으면서 활동했고, 피사로와 폴 세잔 등과도 같이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갱은 조르주 쇠라의 신인상주의나 점묘법에 좋지 않은 평가를 했고, 쉬라를 인상주의 전람회에 초대했던 피사로와 대립하며 결국 둘은 절교하게되죠. 이후 고갱은 화가 찰스 라발과 함께 상징주의를 내세우고 퐁타벤 화파를 결성했습니다. 고갱은 유럽의 정통적 화풍인 인상주의는 상징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 부족하다고 여기고, 아프리카나 동양의 미술에 끌리기 시작했죠. 이어 고갱은 민속예술과 일본의 풍속화풍인 우키요에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의 화풍에서 생상을 보다 원색적으로, 외곽선을 두텁게하며 종합주의로 발전시킵니다. 이어 고갱은 1887년 파나마를 방문한 뒤, 찰스 라발과 함께 마르티니크의 생피에르에서 체류했습니다. 이후 마르티니크에서 그린 그림은 미술상 아르센 프와티에의 갤러리에 전시됐죠. 프와티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 반 고흐와 거래를 하고 있었죠. 테오가 고갱의 작품을 산 것을 계기로 고갱과 고르는 친분을 맺게 됐고, 테오의 주선으로 아를에 있는 고흐의 노란 집에서 둘은 같이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흐와 고갱이 같이 작업한지 9주가 흐르자 고갱은 갑자기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집을 나옵니다. 1888년 12월 23일 고갱의 편지에는 고흐가 고갱을 비난했다고 적혀있었죠. 또한 그날 밤,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릅니다. 다음 날 고흐는 아를의 한 정신병원으로 가게되고, 고갱은 아를을 떠났습니다. 둘은 생전 다시는 만나진 못했지만 연락은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고갱이 1889년 제작한 '자화상, 머리 모양의 물병'은 당시의 트라우마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역사 속 오늘] 로버트 F. 케네디 암살사건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968월 6월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앰버 시더 호텔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납니다. 미합중국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는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앰버시더 호텔 무도실에서 연설을 하죠. 이후 호텔 키친에서 일하는 성원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무도실을 나왔습니다. 로버트 케네디는 당시 호텔 주방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던 16세 소년 후안 로메로와 악수를 했고, 그 순간 요르단계 이민자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이 총격을 가합니다. 관중들로 꽉 찬 통로에서 시르한은 8발을 쐈고, 이 중 3발을 맞은 로버트 케네디는 그 자리에 쓰러졌죠. 로버트 케네디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다음날 새벽 1시께 사망합니다. 시르한은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국적의 이민자로써 당시 로버트 케네디가 친이스라엘적인 행동을 한 것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이후 재판에서 시르한 은 사형을 선고받으나, 캘리포니아 주에서 사형제가 폐지되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됩니다.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사건은 미국에 큰 충격이 됩니다. 그의 형인 존 케네디 역시 암살을 당했고,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죠. 또한 당시 미국의 진보 진형인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기에 미국의 정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한편 2001년 1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조버트 케네디의 탄생 76주년을 기념하면서 미국 법무부 청사의 이름을 로버트 F. 케네디 빌딩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역사 속 오늘] 1989년 중국 천안문 유혈진압 사태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989년 6월 4일.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펼쳐진 대규모 민주화 운동을 중국 정권이 유혈진압합니다. 중국 정부는 '1989년 춘하계 정치 풍파'라고 지칭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천안문 사태', '천안문 항쟁'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죠. 또는 '중국의 피의 일요일', 베이징 대학살', '천안문 민주화 운동', '1989년 톈안먼 광장 저항'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개혁개방이 추진됐으나 자본주의 체제가 도입되면서 관료의 부패와, 인플레이션, 실업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이전 문화대혁명의 사회적 분위기가 완화되면서 범죄가 증가합니다. 이에 당시 중국 정부 당국은 범죄를 엄정하게 처벌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부정부패는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심해졌죠. 이에 당시 당시 중국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었던 덩샤오핑의 심복인 후야오방 당총서기는 민주화 요구와 부정부패 척결에 동조적으로 나왔죠. 그러나 후야오방은 1989년 정치국 회의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4월 15일 숨지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베이징에서는 지식인들과 대학생,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졌죠. 시위가 점차 격렬해지자 당시 덩샤오핑은 4월 26일 북경의 시위를 통제하라고 지시했죠. 그러나 시위는 누그러들지 않았습니다. 5월 15일 당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베이징을 방중하기로 했으나, 천안문에는 시위대가 가득했죠. 이에 5월 20일 정부는 베이징에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6월 3일 밤 시위대를 무력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이날 밤 10시 베이징 동서에서 진입한 중국군 제 38집단군과 공군 제 15 공수부대, 육군 제 39집단군 등 중국 군은 전차와 총기를 동원한 무차별 발포로 군중을 강제해산시켰죠. 이윽고 4일 광장에 남은 시위대에게 정부 측은 협상을 제시합니다. 시민들에게 목숨을 담보로, 시위 지도층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자 시위대는 결국 해산하죠. 그렇게 1989년 시위는 마무리됩니다. 이어 5일 시위가 마무리되고, 천안문 광장에서 59식 전차 18대가 전개됩니다. 이때 이 전차를 막아서는 한명이 사람이 있었습니다. 흔히 '탱크맨'이라고 불리며 6.4 항쟁의 상징이 된 이 사람은 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양손에 검은 비닐봉투와 옷가지를 든 채 전차 앞을 막아섭니다. 이에 전차가 방향을 바꿔 옆으로 지나가려고 하자, 그는 다시 그 앞을 가로막죠. 이후 시민들이 그를 대려갑니다. 이 사람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당시 영국의 언론 선데이타임스는 탱크맨을 왕웨이린이라고 보도했지만 이조차 확실하진 않죠. 1990년 장쩌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ABC방송과 기자회견에서 앵커의 질문에 "그가 사형 당하거나, 탱크가 그를 깔아뭉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그가 대만으로 망명했다는 설과, 이름을 바꾼 채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설, 혹은 당시 처형을 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역사 속 오늘] 독일 최악의 고속철도 사고 에셰데 열차사고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998년 6월 3일 독일 니더작센 주 에셰데에서 고속철도 탈선사고가 발생합니다. 당시 승객 287명과 승무원 6명이 타고 있던 뮌헨발 함부르크행 51편성 IEC 884호 열차는 뮌헨을 출발해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리크, 뷔르츠부르크, 풀다, 카셀, 괴팅겐, 하노버 등을 거쳐 함부르크에 도착할 예정이었죠. 그러나 하노버까지 순조롭게 도착한 열차는 함부르크를 130㎞ 앞둔 상태에서 사고가 일어납니다. 첫번째 객차에서 세번째 바퀴의 외피가 끊어지면서 외피가 객실 바닥을 뚫고 나왔죠. 이에 한 승객은 깜짝 놀라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면서 승무원을 찾아갑니다. 승무원을 만난 이 승객은 객실 바닥에서 무언가가 뚫고 나왔다고 설명하면서 기차를 멈추라고 하지만, 승무원은 직접 상황을 봐야겠다고 답하죠. 그리고 수십초 후 사고가 발생합니다. 끊어진 바퀴의 외피가 분기기의 철도와 부딪치면서 교차로의 철로를 들어올렸고, 철로는 첫번째 객차를 뚫고, 기차를 공중으로 띄워버립니다. 또한 당시 충격으로 동력차의 바퀴가 탈선해버리죠. 몇초 후 탈선된 바퀴는 두번째 분기기의 포인트를 강타하며 다른 방향으로 돌려버렸습니다. 동력차와 이어진 객차들이 다른 철로를 타게 되 버린 것이죠. 뒷따라오던 객차들은 모조리 튕겨나가 옆에있던 다리에 부딪쳤습니다. 당시 기차는 200㎞/h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승객 99명과 사고 당시 인근에서 근무 중이었던 인부 두 명이 휩쓸려 사망했습니다. 또한 중상자 88명을 포함한 194명이 다치죠. 이 사고는 현재까지도 세계 최악의 철도 사고로 기록돼 있습니다. 앞서 사고 차량인 ICE1은 당시 열차가 흔들리고, 소음도 심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철스프링을 소음 감소와 진동 감소에 좋은 공기 스프링으로 바뀌기에는 비용 등의 문제가 많았죠. 이에 차선택으로 일체성형제작 방식인 바퀴를 고무가 삽인된 바퀴로 변경합니다. 일체성형제작 방식으로 제작된 바퀴에 비해 바퀴의 크기를 줄인 후, 금속 외피를 씌우고 그 사이에 고무흡진재를 부착해 진동과 소음을 줄인 것이죠. 반면 고무 흡진재를 사용한 바퀴는 일체성형제작 방식에 비해 내구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결국 사고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신간] 홈쇼핑의 세계/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잃어버린 기도의 비밀

[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홈쇼핑의 세계 이 책의 저자 지크는 10년 차 홈쇼핑 PD로 일하며 홈쇼핑에 대한 세간의 다양한 인식을 접했다. '과장 광고', '질 낮은 상품', '출연진과 협력사에 갑질', '경품 당첨 조작'…. 이렇듯 홈쇼핑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저자는 홈쇼핑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DAUM 브런치'에 홈쇼핑 산업과 홈쇼핑 PD로서 겪은 현장 생존기를 기고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구독자들의 반응은 훨씬 뜨거웠으며 어떤 글은 20만을 훌쩍 뛰어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후 그는 홈쇼핑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집필했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막연한 존재로 인식되었던 홈쇼핑의 오해와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내는 것이 목적이다. 이 책은 홈쇼핑 산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 이 세계가 직면한 위기,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과 가능성까지 모두 다루고 있다. 특히 홈쇼핑 PD 직군뿐만 아니라 해당 산업에 속한 여러 직군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업계 정보를 필요로 하거나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홈쇼핑 산업 종사를 꿈꾸는 자에게 이 책은 해당 직무의 이해를 돕고 관련 채용 시험을 준비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특히 홈쇼핑 PD 지망생이라면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상당수가 자신이 곧 마주할 미래인지도 모른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베스트셀러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이 삶의 품격을 높이는 말하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기업 회장과 두 전 대통령의 '말'을 듣고 쓰고 고치는 일을 해온 그는 어떻게 하면 가장 쉬운 말로 진심을 전할 수 있는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이 책은 누구보다 '말의 기본'에 천착해온 저자가 '말이 되는 삶, 삶이 되는 말'에 관해 들려주는 73가지 말공부 수업을 담았다. 세상에는 말이 칼이 된다는 것을, 그 칼이 자신을 향한다는 것을 잊은 사람이 많다. 말이란 나다움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가장 어른다운 무기이다. 나이 든다고 어른다운 어른이 되지 않듯, 말 또한 제 나이에 걸맞게 끊임없이 가꾸고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려서부터 소심했고 남 앞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했던 저자가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되고, 이제 말과 글을 가르치는 인기 강사가 되기까지… 오랜 경험과 통찰, 여전한 시행착오와 분투를 담은 이 책은 말과 삶을 함께 갈고닦는 특별한 지혜를 전한다. ◆잃어버린 기도의 비밀 UN, '포춘' 500대 기업, 주요 대학들이 찾는 과학자이자 영성가 그렉 브레이든의 대표작이다. 수많은 아마존 독자가 '인생 책'으로 꼽은 글로벌 스테디셀러 '잃어버린 기도의 비밀'이 새로운 번역과 편집으로 나왔다. 인류의 95%가 우주를 창조한 신비로운 힘의 존재를 믿고 그것에 '말을 걸기' 위해 기도를 한다. 우리는 소망을 말하며 간절히, 끊임없이 기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많은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무엇이 기도이고 무엇이 기도가 아닐까? 아메리칸인디언의 지혜부터 티베트불교까지, 양자물리학부터 프랙털기하학까지, 종교와 과학의 경계를 허문 20여 년 탐구로 밝혀낸 기도의 모든 것. 기도를 둘러싼 의문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도 실증적인 대답. 출판사 측은 우리가 잃어버린 기도의 핵심과 반드시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이 이 책에 담겼다고 설명했다.

[역사 속 오늘] 이탈리아 공화국의 날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1946년 6월 2일 이탈리아에서 왕정과 공화정을 두고 국민투표가 진행됩니다. 앞서 2차 세계대전 직전 이탈리아 왕국에서는 파시즘이 생겨나면서 베니토 무솔리니가 국가 파시스트당을 창설합니다. 또한 로마 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국가의 지도자로써 정권을 잡죠. 당시 이탈리아 왕국은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세계강대국 중의 하나였죠. 이탈리아 왕국은 알바니아를 합병하는 등 정복전쟁을 하던 중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왕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에 패전하며 크게 흔들립니다. 심지어 무솔리니는 전쟁 도중 축출됐고, 이후 처형당하기까지 합니다. 이에 민심은 크게 흔들립니다. 당시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라 3세는 무솔리니의 전횡을 조장했고, 당시 독일군이 이탈리아 영내에서 계속해서 전쟁을 벌였죠. 결국 비토리오 에마누엘라 3세는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퇴위하고, 움베르토 2세가 즉위합니다. 이미 돌아선 민심은 바꾸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탈리아 공산당, 사회당, 행동당, 기독교민주당, 노동민주당, 자유당 등을 중심으로 국민해방위원회가 수립되고, 1946년 6월 2일 왕정과 공화정 중 하나를 선택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됩니다. 투표 결과 공화제 지지 54.3%, 군주제 지지 45.7%를 기록하며 이탈리아는 공화제를 채택하게 되며 국왕인 움베르토 2세를 비롯한 이탈리아 왕실 일가는 이탈리아에서 추방됩니다. 이후 이탈리아는 제헌 의회가 선출되고, 제헌이 이루어지며 이탈리아 공화국이 됐습니다. 매년 6월 2일 이탈리아에서는 이날을 국민투표를 통한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기념하는 공화국의 날로 지정합니다.

[역사 속 오늘] 에어프랑스 447편 추락사고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2009년 6월 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 샤 드 골 국제공항으로 가던 에어 프랑스 소속 A330-200 여객기 447편이 대서양에 추락합니다. 현지시간 5월 31일 오후 7시 반, 에어 프랑스 소속 A330-200 여객기는 승무원 12명과 승객 216명을 태운 채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납니다. 이후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 6월 1일 새벽 1시 49분께 브라질 해안에서 해당 여객기가 레이더에 포착됩니다. 이후 같은 날 새벽 3시께 세네갈에서, 4시께 카보베르데에서 레이더에 포착되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그대로 실종됐습니다. 이후 여객기는 브라질 동부의 먼 바다에서 잔해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6월 7일 브라질 해안에서 여객기의 잔해와 탑승객들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추락한 것으로 결론납니다. 이후 2011년 기준 104구의 시신이 발견됐죠. 당시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던 운항승무원은 기장 1명과 기장급 부조종사 2명으로 13시간동안의 긴 운항에 대비해 조종실 뒤에 운항승무원 전용 휴식 공간에서 1명씩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었죠. 그리니치 표준시 1일 오전 2시 1분께 기장은 휴식을 위해 부조종사와 자리를 바꿉니다. 이후 2시 6분 비행승무원들은 객실 승무원에게 항공기가 난기류 구역으로 진입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죠. 그러나 이후 2시 10분께 자동 조종이 해제되고, 비행기의 조종이 수동으로 바뀝니다. 또한 속도계와 고도계가 모두 오류를 일으키죠. 흔들리는 난기류 속에서 2명의 부조종사는 좌우로 틀어지는 비행기를 조종합니다. 이때 조종사 1명이 여객기의 기수를 위로 향하게 합니다. 여객기는 그대로 상승해 고도 3만8000피트까지 상승합니다. 그러나 상승하면서 기수가 위로 향해 속도가 줄어든 여객기는 실속 상태에 빠져 추락하게 됩니다. 이후 2시 11분께 휴식을 취하고 있던 기장이 돌아왔지만, 이후 기장과 부조종사 둘 모두, 다른 부조종사가 기수를 위로 올려 실속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죠. 이후 조종을 하고 있던 부조종사가 "내가 계속 스틱을 당기는데 왜 고도가 떨어지냐"고 말했고, 그제서야 둘은 실속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기수를 내리지만, 고도가 6000피트까지 떨어진 여객기는 결국 추락하게 됩니다. 추락의 원인은 조종사 과실과 계기판의 오류로 추정됩니다. 당시 자동조종이 수동으로 바뀌게 된 원인은 과냉각에 의한 피토관(유속 측정장치) 결빙으로, 일시적으로 과도한 양의 과냉각수가 유입돼 모든 피토관이 얼어버리면서 속도계와 고도계가 오류를 일이켰죠. 물론 이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피토관에 히터가 설치돼 있고, 해당 여객기도 약 1분만에 얼었던 피토관이 녹으면서 속도계와 고도계는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당시 난기류로 흔들리는 비행기 속에서 속도계와 고도계가 오류를 일으켜 믿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조종을 맏고 있던 부조종사의 판단 미스로 인한 추락이었죠. 피토관 결빙으로 자동조종이 수동으로 바뀌고 나서 비행기가 추락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4분가량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신간] 나도 돈 벌고 싶다-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돈이 창업 목적 아니다?

[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청년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숫자가 가히 국가적인 기세로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사업자의 70%가 20~30대 청년 창업자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열심히 돈을 벌어 가치 있게 쓰는 일은 자본주의 사회 시민들에게 주어진 숙명이요, 삶의 또 다른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 세대는 또 다른 형태로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자 저마다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취업 대신 창업으로, 직장인 대신 청년 사업가로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은 스타트업 최전선에서 맹렬히 활약 중인 대표적인 20~30대 청년 사업가 8명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막연하게나마 스타트업을 생각하고 창업을 꿈꾸는 많은 이가 가장 빈번하게 막막함을 느끼는 지점, 바로 '어떤 사업을 벌일까?'하는 문제일 것이다. 첫발을 떼기 전부터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창업의 세계는 심해 속 미지의 세상과도 같다. 그만큼 광활하다.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상상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업의 재료로 삼을 수 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 그 폭은 더욱 까마득하게 확대되는 중이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 등 8인의 청년 창업자 대부분은 '자기 자신' 또는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발견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책은 위대한 것은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의미 있는 무엇은 늘 가까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의 소박한 씨앗들은 바로 내 주변에,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거리에 존재한다고 8인 청년 창업자는 한목소리를 냈다. 김슬아 대표가 돈이 창업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 점도 눈길을 끈다. 김 대표는 "실질적 가치가 만들어지면 당연히 돈을 벌게 되니 '실질적 가치'라는 것에 100%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돈을 만들어내는 가치에 집중한다면 돈을 잘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근 아시아타임즈 논설위원, '과학자의 명언으로 보는 교양과학' 펴내

[아시아타임즈=윤진석 기자]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말은 힘이 세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세상을 흔들 수도 있다. 특히 위대한 성인이나 사상가, 혹은 유명인의 긍정적인 한마디는 한 사람의 좌표가 되어 인생 전체를 바꿀 수도 있다. 본사에서 과학칼럼니스트로 재직하고 있는 김형근 논설위원이 유명 과학자들이 남긴 주옥 같은 명언을 담아 쓴 <과학자의 명언으로 보는 교양과학>이 출간됐다. 이 책은 시대를 앞서간, 그래서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과학자 35명의 명언을 통해 누구나 새로운 방식으로 과학세계에 들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중요한 명언의 경우는 본래 의를 살리기 위해 원어인 영어 문구도 실었다. 갈릴레오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에디슨의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다윈의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똑똑한 종도 아니고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이 같은 말 속에는 비단 명언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가 살았던 시대의 문화와 역사, 종교와 철학만이 아니라 과학자 자신의 인간적 고뇌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주의 근본물질이 ‘수’라고 생각한 고대 수학자 피타고라스부터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와 다방면으로 천재성을 드러낸 르네상스 시대 과학자 다빈치, 근대 과학을 연 뉴턴과 갈릴레오, 현대 물리학의 거장들과 생명공학의 선구자, 과학철학자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자가 이 책의 등장인물이다. 과학자들의 삶을 만나는 것은 그들이 살았던 세상과 과학세계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과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그들이 남긴 명언의 의미와 시대적 맥락, 과학적 고뇌와 가치 등을 일화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과학을 꿈꾸는 청소년부터 일반인까지 누구나 과학을 교양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시대를 바꾼 과학자들의 한마디는 오늘도 우리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저자 김형근 논설위원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나 부산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광고대행사 오리콤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코리아헤럴드>와 <중앙일보>에서 정치부, 국제부, 사회부, 문화부를 오가며 20여 년간 기자로 근무했다. 2004년 한국과학창의재단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 타임즈>를 시작으로 과학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비전공자의 눈으로 과학 세상을 들여다보며 과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비롯해 200여 명이 넘는 해외 유명과학자와 인터뷰했으며, 50여 명이 넘는 세계 유명 미래학자들을 만나 토론했다. 지은 책으로 ≪행복한 과학자의 영어노트≫, ≪남자와 여자를 탐구하는 과학 롤러코스터≫, ≪우리의 미래가 사라진다≫, ≪아테네 학당≫, ≪유레카의 순간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히틀러의 과학자들≫, ≪잃어버린 본성을 찾아서≫, ≪역사를 다시 쓴 10가지 발견≫, ≪누가 인간을 조종하는가≫, ≪혁신의 예언자 슘페터≫, ≪술의 세계사≫ 등이 있다.

[신간] 셜록 홈스의 과학수사/인생의 문장들

[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셜록 홈스의 과학수사 현대 기술을 진화를 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가고, 과학의 기술 역시 날로 발전해가는 요즘, 사건·사고와 같은 범죄 역시 끊이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수사 역시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과학수사하면, 셜록 홈스가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그와 법과학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셜록 홈스'는 출연 이후 21세기에도 여전히 책,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등장하며, 새로운 팬과 일명 셜록 홈스 추종자들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셜록 홈스는 시대를 초월한 묘한 매력의 소유자이자, 상상력과 정직함으로 무장한 일류 법과학자이다. 그의 과학수사 방법, 프로파일링 사례는 그만큼이나 사랑받고 지금까지도 범죄 수사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할만하다. 셜록 홈스를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이 활동하던 시기는, 수사 기법이 시작되거나 실용되기 시작하던 때이다. 이 책에는 홈스가 법과학으로 추리 수사했던 사건들을 살펴보며, 홈스의 사건이 어째서 과학의 시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지를 알려준다. 오늘날에도 관찰력과 철저하고 빈틈없이 조사하기 전까지 범죄 현장을 최대한 보존하는 일은 범죄 현장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돋보기, 지문, 족적, 의학, 관찰 방법 등 홈스가 선보인 법과학 수사 기술은 정교하다. 그리고 이것들은 홈스의 명언인 ‘불가능을 제외하고 남은 것은 아무리 믿을 수 없어 보이더라도 진실이다’라는 말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홈스는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기 전에 가설을 세운다면 엄청난 실수를 하는 셈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현대 수련의가 읽는 책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말이라고 한다 '기본', '관찰과 분석'으로 '셜록 홈스'라는 이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법심리학, 특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분야인 프로파일링에서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저 소설에 불과할지도 몰랐을 하나의 캐릭터였던 '셜록 홈스'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법과학에 있어서도 중요한지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인생의 문장들 청년들의 멘토라 불리는 저자는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하다 58세에 퇴사, 60세에 30대 동업자와 창업에 도전한다. 그렇게 다시 성실하게 10여년을 일했고 상장할 정도로 회사를 크게 성장시킨 뒤 70세에 미련 없이 퇴사 후 지금까지 대학 학장으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후회 없는 삶, 스스로에게 열과 성을 다한 삶을 살면서 저자가 깨달은 것은 독서의 힘이다. 20대 때부터 50년이 넘도록 책을 놓지 않았고 지금까지 1만 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하나하나 감명 깊은 인생의 문장들을 쌓아오던 저자는 지금까지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더해 소박한 한 권의 책을 써냈다. 책에는 다양한 책에서 건진 명언들과 명언에 얽힌 이야기, 저자의 경험담 등 우리에게 필요한 인생 조언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평생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자신의 삶에 충실했던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내 삶에 무기력하지 않은지'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12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베르나르 드 샤르트르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면 더 멀리 볼 수 있다"고 했다. 옛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자는 더 크고 넓은 세상을 향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1만권의 책에서 정성껏 고른 보석 같은 명언을 곱씹어 읽어보면 관계, 일, 성장 등 내 삶에 필요한 현명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출판사 측 설명이다.

오리온 직원, 인도출장 중 사망…사후 코로나19 확진판정

[아시아타임즈=박고은 기자] 인도로 출장을 떠난 오리온 직원 1명이 코로나19로 인해 현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18일 오리온에 따르면 인도 라자스탄주에 위치한 오리온 공장으로 장기출장 중이던 직원 A씨가 9일(현지시간) 현지에서 숨을 거뒀다. A씨는 사망 전 감기 증상이 있어 약을 복용했고 자가진단키트를 통해 검사한 코로나19 진단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다. 하지만 사망 후 실시한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의 유해는 앞서 15일 국내 항공편으로 송환됐으며, 발인은 이날 진행된다. 오리온 관계자는 "인도공장에 파견된 직원은 A씨 포함 B씨, 주재원 C씨 총 3명이었다"며 "B씨와 C씨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오랜 기간 함께 근무해온 임직원들의 충격이 매우 크다"며 "회사 측과 전 임직원들은 상심이 클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고인이 이룬 업적과 성과를 기리며 예우를 다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오리온은 지난 2월 인도공장을 준공하고 '초코파이' 현지 생산을 본격화했다.

[아하 인터뷰] 키위뱅크의 반란 "데이터 플랫폼 앞으로"

[아시아타임즈=신도 기자] "키위뱅크의 최종 목표는 디지털보다 더 세분화된 '데이터 플랫폼'입니다. 변화는 현재진행형입니다." 플랫폼 '키위뱅크(KiwiBank)'의 목표를 두고 이선호 KB저축은행 ICT본부장은 간략하게 말했다. 그는 KB저축은행의 '플랫폼 전문가'로 키위뱅크 개발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플랫폼 구축에 참여하고 있다. KB저축은행은 지난 1분기 6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88% 가량 증가한 실적으로, 1분기 기준 지난해까지 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넘지 못했던 것을 비교하면 상당한 성장이다. 총자산도 처음 2조원을 넘기며 10위권 뒤를 바짝 쫓고 있다. KB저축은행의 성장 뒤에는 키위뱅크가 있다. 상징색부터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키위뱅크는 타사 앱과는 다른 개성을 추구했다. 이 본부장은 플랫폼의 성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에 상당한 보람을 느낀다. 그는 "키위뱅크를 어떻게 하면 차별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민을 거듭했다"며 "5년 전 처음 개발 인력 세 명과 함께 시작했던 플랫폼이 지금은 10만명에 가까운 고객을 확보하는 등 성장을 확인하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키위뱅크는 키위와 특유의 '올리브 그린(Olive Green)' 컬러가 떠오른다. 키위뱅크가 구축한 이미지 마케팅의 결과다. 키위뱅크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이 본부장은 "키위뱅크의 전신인 '착한뱅킹'에서 'Kind'를 따오고, 무선기술·모바일을 의미하는 'Wireless'의 앞 두 글자씩을 따왔다"며 "키위처럼 상큼하고 알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중의적인 의미도 함께 넣었다"고 언급했다. 그 덕분에 키위뱅크는 희망사항처럼 소비자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통해 성장했다. 두달 뒤면 1주년이 되는 키위뱅크는 실적 면에서 남부럽지 않은 성과를 일궜다. 착한뱅킹 시절 3만명 수준이던 이용 고객은 1년도 되지 않아 10만명에 가까운 고객 수를 확보했고, 중금리 대출에서도 우량고객을 중심으로 한 수요를 발굴해 중금리 대출 실적에 기여했다. '키위뱅크 체크카드'나 KB Pay(페이) 등 간편결제와 합종연횡한 상품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둘 다 키위뱅크의 대표적인 제휴 서비스로 앱 내에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키위뱅크 체크카드의 경우 출시 후 1만장에 가까운 발급건수로 고객 인기를 체감하기도 했다. 이 본부장은 실적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실적은 키위뱅크가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해 성장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며 "하지만 우리는 더욱 고객이 이용하기에 편리한 플랫폼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편의성에 기반한 서비스 구축 사례로 '쉐이커(Shaker) 기능'을 소개했다. 쉐이커 기능은 최근 카카오톡(Kakaotalk) 실험실에서 도입되며 알려진 기능으로, 앱에 들어간 상태에서 스마트폰을 두 번 흔들면 지정한 메뉴로 바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그는 "해당 기능은 키위뱅크가 먼저 선제적으로 도입한 바 있었다"며 "쉐이커 기능으로 입금·송금 등 주요 기능을 빠르게 실행할 수 있어 고객은 타사 앱보다 빠른 금융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키위뱅크의 최종 목표는 데이터 플랫폼이다. 데이터 플랫폼이란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의 플랫폼이다. 그는 현재 고객들이 이용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에 비해 세분화되고 발전된 형태라고 설명했다. 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해서는 각 금융권 사이 합종연횡으로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현재의 디지털 환경에서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기에는 아직 헤쳐나가야 할 과정이 많다"며 "고객 수도 지금보다 더 확충해야 하고, 어떻게 데이터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B저축은행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키위뱅크는 웰컴저축은행의 웰컴디지털뱅크(웰뱅), SBI저축은행의 사이다뱅크에 이어 업계 내 3위 앱으로 올라섰다. 주요 저축은행들이 각자 디지털 플랫폼을 꺼낸 '플랫폼 홍수' 속에서 건진 값진 성과다. 이 본부장은 "키위뱅크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업계 내 톱 클래스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수익도 비대면에서 나오는 시기, 고객과 금융사 모두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데이터 창구'의 역할을 키위뱅크가 추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켓컬리, 퍼플 박스 도입…’과대포장 논란’ 잡았다고?

[아시아타임즈=박고은 기자] "컬리 퍼플 박스가 개당 1만 5000원씩 하더라고요. 처음으로 '마켓 컬리가 컬리 퍼플 박스로 장사를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소비자 A씨) "쿠팡처럼 보냉 백을 무료로 제공한 뒤 수거하는 방식인 줄 알았는데 판매하는 거더라고요. 그런데 전월 30만원 이상 결제한 화이트 등급 이상만 살수 있다고해서 조금 언짢네요." (소비자 B씨) 그동안 '과대포장'으로 소비자들의 눈총을 샀던 마켓컬리가 재활용 포장재 '컬리 퍼플 박스'를 도입하며 만회에 나섰다. 하지만 소비자를 등급으로 메겨 부합하는 고객에 한해서만 주문이 가능한 점, 비교적 높은 단가 등이 소비자 불만으로 터져나오면서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신선식품 위주로 새벽 배송을 진행하는 마켓 컬리는 그동안 소비자들 사이에서 과대포장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냉장·냉동·상온 상품을 각각 따로 택배 포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탓에 큰 택배 상자에 상품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가 하면, 식품을 보호하기 위한 뽁뽁이 등 완충재가 더 많이 쏟아져 나오면서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택배 하나를 정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쓰레기 배출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특히 전 업계에서 추진 중인 '친환경 경영'과도 엇박자 행보라는 비난도 잇따랐다. 과대 포장의 심각성은 소비자 조사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나왔다. 한국소비자원이 이달 1일 발표한 마켓컬리·쿠팡·SSG닷컴 등 이용률이 높은 상위 3개 새벽 배송업체 소비자 조사에서 24.1%가 새벽배송 서비스에서 가장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과대 포장'을 꼽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걸까. 최근 마켓컬리는 재사용 보냉백 컬리 퍼플 박스를 선보였다. 컬리 퍼플 박스는 냉장·냉동 상품을 구분해 약 47ℓ 용량을 담을 수 있도록 했다. 배송은 샛별배송 주문 후 문 앞에 박스를 놓아두면 배송 기사가 주문한 냉장·냉동 상품을 컬리 퍼플 박스에 담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상온 제품은 종이 포장재에 별도로 담아 배송된다. 문제는 베타 서비스이지만 당장 회원 등급(화이트~더피플) 조건에 부합하는 고객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 타 새벽 배송 업체와 달리 보냉백을 개당 1만 5000원에 구매해야한다는 점이다. 현재 쿠팡 로켓프레시와 쓱(SSG)닷컴은 원하는 고객에게 보냉백을 무료로 제공한 뒤 수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비자 A씨는 "컬리 퍼플 박스의 원가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1만 5000원이라는 가격 정책에 기분이 상했다. 처음으로 '마켓컬리가 컬리 퍼플 박스로 장사를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소비자 B씨도 "재사용 보냉백을 선보임으로써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부분은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면서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컬리를 이용하는 고객으로써 회원 등급 조건을 나눠 판매하는 것은 언짢은 심정"이라고 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회원 등급 조건을 내걸은 점에 대해 "화이트 등급 이상은 주문 횟수가 많은 고객들이라 피드백 받기가 더 용이하다고 생각했다"며 "현재 진행 중인 시범 서비스 기간이 끝나면 부족한 부분을 확인, 보완한 뒤 전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격 정책에 대해서는 "1만 5000원이지만 고객에게 구매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처럼 종이박스로 상품을 받아도 되거나, 가정에서 보유하고 있는 보냉 박스에 상품을 받아도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