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타임즈=김지호 기자] 연예계에서 시작된 ‘학폭 미투’(나도 학교폭력의 피해자) 체육계를 거쳐 사회 전방위로 퍼지고 있다. 가수 진달래, 배구선수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와 송명근과 심경섭 등은 물론 경찰과 공무원 등 일반인에 대해서도 학폭 미투가 이어지고 있다.
작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국가대표 출신 고 최숙현 선수가 팀내 가혹행위로 목숨을 끊었고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가 양부모에 폭행과 학대를 당해 숨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폭력에 대한 비난의 수위가 높아진 와중이다.
대기업에서 ‘성과급 대란’을 일으킬 정도로 불합리함을 참고 넘어가지 않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가 많아진 이유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우리나라는 아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살아있어 학폭 미투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형법 제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허위 사실이 아니라 사실을 적시해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면 처벌을 받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 학폭 미투가 SNS를 통해 온라인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 70조 1항이 적용돼 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높아진다.
자칫 학폭 미투에 나섰다가 상대방이 사실이 맞다고 인정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당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형법 제310조에 명시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는 위법성조각 사유가 인정되면 정보통신망법의 ‘비방의 목적’ 사라져 처벌받지 않지만 이 같은 위법성 조각사유가 적용되는 사례는 드물거나 명확한 기준이 없다. 또한 특정인의 학교 폭력 사례 폭로가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도 사실 애매하다.
이로 인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유엔(UN)은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영국은 명예훼손죄가 아예 없으며 미국도 일부주에서 허위사실 명예훼손 조항만 남겨두고 적용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독일 등은 허위사실 명예훼손죄만 있다.
이미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07조 1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다. 곧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 중에서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 등도 있다. 병원의 비리를 보도했던 기자도 포함됐다. 이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잘못을 알리려다가 하루아침에 자신도 가해자가 됐다.
‘투명한 사회’로 가는 길을 막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이번에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헌법재판관들의 현명한 판단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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